광고

다석의 그리스도론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3/12/19 [13:13]
“예수는 하느님에 대해 최고 효자였다”

다석의 그리스도론

“예수는 하느님에 대해 최고 효자였다”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3/12/19 [13:13]

▲ 다석 선생(맨앞)이 화천요양소장 이상범(뒷줄 가운데)씨의 초대로 강원도 화천에 내려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

다석은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을 일컬어 ‘없이 계시는 아바’라고 하고,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한마디로 압축해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고 하였다. 부자유친은 유교의 부모와 자식 관계를 하느님과 인간 관계로 확대해석한 것이다. 다석은 하느님을 일컬어 무(無), 공(空), 허공(․虛空)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동방의 불교와 노장사상, 서방의 신비주의와 부정신학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다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보았을까. 다석은 한글 한 자 한 자에 신령한 기운[靈氣]이 서린 것처럼 여긴 나머지 한글의 뜻을 새기곤 했다. 국어국문학자들은 다석의 ‘한글놀이’를 가소롭게 여길 게 틀림없다. 다석의 한글놀이가 무리하긴 하지만, 그 속에 번뜩이는 기지는 높이 살만하다. 다석은 ‘예수’의 ‘예’ 자와 ‘수’ 자의 뜻을 살피곤 했다. 우선 ‘예’는 ‘여기’의 준말이고, ‘수’는 ‘능력을 뜻한다’고 풀이했다. 따라서 예수 두 글자의 뜻을 합치면 ‘그분께 구원능력이 있다’ 곧, 예수는 ‘구세주’라는 뜻이 된다. 우리말 예수의 뜻과 히브리어 예수의 뜻(=하느님이 구원하신다)이 일치한다면서 다석은 감탄했다.


다석은 ‘그리스도’의 뜻을 ‘그립다’ ‘그리 서다(立)’ ‘그리다’ ‘글(文)이 서다(立)’ 등 여러가지로 풀이했다. 예수는 하느님을 그리워한 까닭에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하느님을 향해 꼿꼿이 ‘그리(그렇게) 섰다(立)’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을 바로 그리는 글만이 글로 성립된다(文立)고 했다. 다석은 그런 글(성경)이 그립다고도 했다.


다석은 코로 숨 쉬듯이 성령을 받아서 예수마냥 하느님의 아들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야말로 ‘부자유친 영성’이다. 다석은 시편과 효경(孝經)을 연결시켜 이렇게 단언했다. “지극한 효는 하느님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아버지에게만 효를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하느님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효자입니다. 하느님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예수처럼 한 이가 없습니다.”


“지극한 효는 하느님에게 바치는 것”
‘하느님 사랑’ 예수처럼 한 사람 없어
예수, 하느님 그리워하다 그리스도 돼


다석은 1957년 3월1일 자신과 하느님의 관계를 두고 이렇게 증언했다. “나는 ‘하나’와 어떤 관계인가 할 때, ‘하나’가 나를 아들 삼은 것을 느낍니다. ‘하나’가 나를 내주고 길러줍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하나’의 아들 노릇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도 이것을 느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독생자(獨生子), 곧 ‘하나’의 아들이라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형제가 없어서 독생자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오직 ‘하나’의 아들임을 깨닫는 관계를 말한 것 같습니다.”


다석은 신약성경에 따라 성령을 ‘하느님의 신령한 기운’[靈氣]으로 이해하고 순수 우리말로 얼·얼김·얼줄이라고 이름 짓곤 했다. 다석은 성령을 받아 사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예수뿐 아니라 예수처럼 사는 신앙인들도 전부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신약성서 전승자들과 필자들은 거의 다 예수의 죽음을 대속죄적 죽음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루가는 신명기적 사관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전에 하느님이 보내신 의인들과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였듯이 이제 의인인 예수를 처형했다고 보았다(사도 7,2-53, 특히 7,52-53). 다석은 의식적이었는지, 무의식적 직감이었는지 예수의 죽음을 루가처럼 풀이해 ‘예수는 의롭게 사신 결과 비명횡사하셨다’고 보았다.


다석은 1957년 5월3일 연경반 강의 때 대속(代贖)이라는 말을 쓰기는 했지만, 그 내용은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의미와는 다르다. 예수는 천직에 매달린 나머지 순직(殉職)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천직에 순직하는 이는 누구나 십자가를 진 사람이라고도 하였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는 천직에 매달린 분입니다. 천직에 매달린 모범을 통해, 우리를 위한 대속을 보여주었습니다. 죽기로 천직을 다한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건 어딘가에 매달려 가야만 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의 천직에 임무를 다하는 것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와 같은 독생자가 되는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마음으로 천직을 다하는 이가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는 하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될 리가 없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늘 말하듯이 그리스도교에서의 예수는 우리를 대표합니다. 천직에 순직한 자는 장소 여하를 불문하고 교리가 있건 없건 독생자로서 십자가를 진 사람입니다. 결코 편협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다석은 서방 그리스도교계에서 만든 지극히 사변적인 예수신성·예수양성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동방의 도인으로서 자유롭게 믿고 살았다.


다석은 1937년 정초(1월3일) 경인선 오류역(현 구로구 오류동 전철역) 근처 송두용(宋斗用) 집에서 열린 성서연구 모임에서 김교신의 간청에 의해 요한복음 3장 16절을 해설하면서 예수의 영성(靈性), 석가의 불성(佛性), 공자의 인성(人性)이 같은 진리라고 말하였다. 이제까지 그 모임에 나온 사람들이 예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최고의 구세주이고, 석가나 공자는 예수보다 훨씬 아래 사람이라고 믿어 왔는데 다석이 예수․석가․공자 모두가 똑같다고 하자 좌중이 웅성거렸다.


다석의 예수 그리스도관은 ‘예수는 효자다’ ‘예수는 얼 사람이다’ ‘예수의 죽음은 대속죄 사건이 아니다’ ‘예수는 하느님이 아니다’ 등 4가지로 요약된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을 아빠라고 불렀다(마르14,36 참조 갈라4,6; 로마8,15). 아빠의 대칭은 아가이므로 예수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 아빠의 아가로 느끼셨을 것이다. 예수께서 어린이들을 아끼고 사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10,13-16). 엄두섭 목사에 따르면, 유영모는 한아님 아버지 앞에서는 우리가 어린애처럼 해야 한다며 자주 손짓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유교 문화권의 사람들이라면 ‘예수는 효자’라는 이 명제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고 세례 때 성령을 듬뿍 받았으며 성령에 힘입어 활동했다. 예수나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곧 하느님 아빠의 신령한 기운[靈氣]에 힘입어 살았으니 모두 얼사람들이다. 다석은 얼사람 모두를 그리스도라고 했다. 그는 성령을 일컬어 얼·얼줄·얼김·로고스·하느님의 씨·독생자라고도 했다. 이런 표현들은 죄다 사람 깊숙이 내재하는 신성을 가리킨다. 다석은 사람 속에 있는 신성의 깨달음을 강조했다. 이는 마음공부를 역설한 동양사상과 잘 어울리는 반면, 죄와 속죄를 상론하는 서구신학과는 거리가 있다.


온 인류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대신 속죄코자 예수께서 죽임을 당했다는 신심은 오늘날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류의 첫 조상 아담과 또 한 조상 예수는 단순히 한 개인이 아니고 집단인격이라는 사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집단인격사상 때문에 아담의 죄벌과 예수의 대속이 온 인류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러나 한 세기 전만해도 곧잘 먹혀들어가던 집단인격 사상이, 개성을 중시하는 오늘날에는 점점 이해하기 어려운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다석은 예수의 죽음을 두고, 예수는 우리 대신 고통을 받았다[大苦]고 풀이하기도 하고, 천직에 매달리다가 십자가에 매달려 순직했다고도 하는데, 이런 이해는 앞으로 점점 공감을 얻을 것이다. 동방인들이 받아들이기 편한 예수의 죽음이해라 하겠다.


공관복음서와 사도 바울로의 서간집에는 예수를 일컬어 하느님이라고 하는 말이 없다. 예수 신성신앙은 신약성서 말기인 서기 100년경에 집필된 요한계 문헌에 들어있다(요한1,1․18; 20,28; 1요한5,20). 요한계 문헌을 근거로 해서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예수는 하느님’이라는 교리를 만들었고,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는 ‘예수는 하느님이면서 사람’이라는 양성[性, 人性] 교리를 만들었다.


“예수는 순직했다”···代贖신앙은 믿지않아
참마음으로 천직 다하면 누구나 그리스도
‘예수=神’ 등 지나친 공경은 예의 어긋나
세계 신학계 다석사상 점점 공감할 것


동방의 현자인 다석은 서방의 지극히 사변적인 예수 신성 교리, 예수 양성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너무도 존경하고 사랑한 나머지 그를 신으로 추대했겠지만, 지나친 공경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다석은 생각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절대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다석의 이처럼 대담한 예수 이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언하거니와 앞으로 세계 신학계와 종교학계는 다석에게 점점 더 주목할 것이다.


다석은 유불선 사상에 젖은 동방인으로서 서방 경전인 성경을 접하고 자신의 신관, 그리스도관, 인생관을 정립했다. 다석의 신관을 집약한다면 귀일신관(歸一神觀)이다. 만물은 ‘없이 계시는’ 하느님 아바에게서 비롯하고 그분께로 돌아간다는 믿음이다. 현대 종교학계의 표현을 빌린다면 다석의 신관은 신 중심 종교다원주의라 하겠다. 그리고 다석의 그리스도관을 일컬어 흔히 얼그리스도관이라 하는데 옳은 말이다. 예수는 하느님의 영, 성령, 얼, 얼김을 받아 부자유친의 영성을 삶으로써 그리스도로 격상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를 본받아 없이 계신 하느님을 아바로 섬기면 작은 그리스도가 된다는 게 다석의 인생관이었다.


“예수는 믿은 이
아바 아들 얼김(聖靈) 믿은 이
예수는 믿은 이
높낮(高低) 잘못(善惡) 살죽(生死) 가운데로
솟아 오를 길 있음 믿은 이
예수는 믿은 이
참을 믿은 이, 말씀을 믿은 이
한 뜻 계심 믿은 이
예수는 믿은 이
없이 계심 믿은 이
예수는 믿은 이.”

(다석이 빚은 시편 ‘우리 아는 예수’중에서)


 다석은 허황되기 일쑤인 서방 신학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유불선 경전에 익숙한 동방인의 눈으로 성경을 바라보았기에 독보적인 신관과 그리스도관, 인생관을 정립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정통 기독교인들은 이제나 저제나 다석의 사상을 이단시할 것이다. 그러나 서구 신학에 식상한 나머지 우리신학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동방의 현자 다석의 가르침에 감읍하고 감사할 것이다.
 

 
정양모


프랑스 리옹가톨릭대학에서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에서 성서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광주가톨릭대, 서강대 종교신학과 교수와 성공회대 초빙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한국천주교 200주년기념 신약성서 시리즈 ‘마태오 복음서’ 등 다수가 있으며, 유영모 관련 저서로 ‘다석강의’와 ‘나는 다석을 이렇게 본다’가 있다.

  • 도배방지 이미지

많이 본 기사
1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